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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22 레미제라블
  2. 2008/06/22 십보라 - Marek Halter (2)
  3. 2008/02/08 Cosmos
  4. 2007/06/07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 이생진 (2)
  5. 2007/06/07 푸른 밤 / 나희덕
  6. 2007/04/02 인생의 번호가 맞지 않은 월북소설작가 이태준
  7. 2007/04/02 봉별기(逢別記) - 이상
  8. 2007/04/02 금홍에게 - 이상
2008/06/22 13:51

레미제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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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기 시작했다. 7월까지는 6권 모두 읽어내는게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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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2 03:40

십보라 - Marek Halter

요즘 거의 매일 몇 장씩 성경을 읽고 있다.  '종교를 믿으려면 제대로 믿어야지'라는 일말의 의무감에서 시작한 성경읽기가 요새는 매일매일의 즐거움이 되었다. '실감나기'때문이다.

성경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검은 글자와 흰 종이가 아닌, 하나하나 드라마 장면처럼  내 머릿속에서 재현되는 걸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옛날에는 그토록  현실감 없고 나와 관계없이 느껴지던 내용들, 어른들의 이야기가 이제는 나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탓일까. 성경 속에 등장하는 수 만 가지 인간 군상들의 모습은 정말 흥미진진하는 느낌까지 들게 된다. 어느새 성경속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나도 인생의 다채로움과 깊이를 알게 되어버린 것일까?

도서관의 프랑스 서적들 속에서 빅토르 위고의 책들을 끄적거리다가, 우연히 한 칸 위의 책을 집어들었다. 낯익은 이름의 책 제목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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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보라.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십보라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벗어나게 한 지도자 모세의 아내이다. 그러나 그녀의 위대한 남편과는 달리 십보라가 언급된 성경 구절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성경을 읽었을 때에도, 사람을 죽이고 도망쳐 온 이집트인에게 딸을 내어준 그녀의 아버지나, 그와 결혼한 십보라나, 결코 범상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성경에 언급된 바로는 그녀는 구스족 출신의 흑인이다. 놀랍지 않은가? 모세의 아내가 흑인이라니. 게다가 그녀의 아버지는 아브라함의 서자 중 한 명인 미디안 부족의 제사장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백인일 터인데, 무슨 연유로 흑인 딸을 두게 된 것인지 그녀의 출생은 정말 미스터리다.

십보라는 도망자였던 자신의 남편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임을 꿈을 통해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나약한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단련시켰다. 그리고 남편이 자신의 사명을 깨닫게 되자, 편안한 미디안에서의 생활을 버리고 그를 따른다. 남편의 동족들이 이스라엘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녀는 참으로 대단한 선택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사회에 안착하지 못하고, 결국 친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뒤에야 남편과 상봉하게 된다. 십보라가 모세의 곁을 떠나게 된 이유가 성경에 명확하게 적혀있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들이 있다.

혹자들은 제사장의 딸로 곱게 자란 십보라가 이스라엘 노예로서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남편을 떠났다고 탓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미리암이 하나님의 분노를 살 정도로 십보라에 대해 모세를 질책했던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이방인으로서 냉대받다가 결국 쫓겨난 것이다.

순수 혈통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장에서 모세의 아내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국제결혼을 보는 우리의 인식이 아직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처럼. 외모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사람의 어리석음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에도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아니하시고, 공의로서 심판 하시는데도 말이다. 결국 하나님은 십보라의 존재를 질책하는 미리암에게 한센병으로 벌을 내리셨다.

비단 미리암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가 이스라엘 여자가 아닌 구스 여자와 결혼했기 때문에, 하나남의 응답이 시원찮다고 생각하고 불평했을 것이다. 불평불만 가득하고 목이 뻣뻣한 자신들의 들보는 보지 못한 채 말이다. 흑인 아내를 둔 지도자,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큰 허물이었다. 한때 살인자이자 망명자였던, 보잘것 없는 모세를 남편으로 받아주었던 조강지처였다는 사실도, 그녀의 피부색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로 인해 지도자로서 남편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는 현실에서, 십보라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남편 곁을 떠나는 것 이었을 것이다. 수 년이 지난 뒤 남편과 재회했을 때에도, 이방인으로서 핍박받는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어리석은 군중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아들들마저 잃고 만다. 남편과의 짧은 재회 때문에 아들마저 잃고 돌아온 십보라가 아버지의 땅에서 암살당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소설 속의 십보라는 나약한 남편을 한결같이 독려하고 용기를 주었으며,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용기있고 강인한 여인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현명하고 지혜로웠던 여인이었다.

몇 안되는 씨줄과 날줄을 가지고  작가인 마렉 알테르는 너무나 환상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었다. 사실과 허구를 증명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이다. 그의 생생한 묘사력과 탁월한 상상력을 통해, 수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결코 변하지 않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또렷이 드러나고 있다.

사람들은 지금도 외모로 상대를 판단하고 그 속에 담긴 진실을 읽지 못한다. 어째서 과거나 지금이나 이토록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는 것일까.

왜 하루하루의 일상에 대해 당연히 여기고, 감사하지 못하며,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토해내는 것일까. 채찍질에서 해방된 기쁨, 자신들을 해방시킨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린 채 -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았던 노예시절이 좋았노라고 불평을 토해내고, 이집트 신들을 본따서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 목이 뻣뻣하고 우둔한 그들의 모습이 결국 내 모습은 아닐런지.

<십보라>밖에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렉 알테르는 단숨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이 되어 버렸다. <십보라>는 그가 쓴 '성경 속 여인 3부작'의 한 권이라고 한다. 한글로 번역된 <사라>도 읽어보아야 겠다. 나머지는 영문판을 구해서라도 읽어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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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8 16:19

Cosmos

시공을 초월하는 방대한 우주의 조그만 파란 별 속에서 울고 웃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
정말 작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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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7 15:17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 이생진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 이생진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는 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3년동안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ㅡ 1000억의 재산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ㅡ 그 사람 생각을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ㅡ 천금을 내놨으니 이제 만복을 받으셔야죠
'그게 무슨 소용있어'
기자는 또 한번 어리둥절했다
ㅡ 다시 태어나신다면?
'어디서?'
ㅡ 한국에서
'에! 한국?
나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어
영국쯤에서 태어나 문학할 거야'
ㅡ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1000억이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데는 '시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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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7 15:11

푸른 밤 / 나희덕

푸른 밤 /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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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2 21:02

인생의 번호가 맞지 않은 월북소설작가 이태준

인생의 번호가 맞지 않은 월북소설작가 이태준


최진이 (탈북시인)


월북소설작가 이태준은 사라진지 하도 오래되어 북한의 문학 신진들에게서는 그 이름이 잊혀지다시피 하였다.

작품도 전멸했지, 그 시대 사람들은 다 가버렸지 그의 실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대학 문학사 교과서에 반동작가라고 두어 줄 열거되고 만 걸 보아 큰 인물일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이런 그를 파악할 기회가 나에게 생겼다.

내 친구가 이태준 막내딸의 일기와 이태준 맏딸이 육필로 쓴 가족사에 대한 수기를 극비리에 한 권씩 빌려준 것이었다. 처음엔 그렇단 말을 일절 안하고 그냥 볼만한 책이라고만 했다.

약속한 시간, 약속된 장소에 갔을 땐 책 주인이 갑자기 책 찾으러 온다는 연락이 왔다고 하였다.

“책장 열쇠 못 가져 왔다고 하세요.”

사실 그의 ‘못 가져 온 책장 열쇠’ 때문에 나도 두 번째 한 걸음이었다. 친구는 결심한 듯 자기 방에 들어가 책장의 책을 꺼내 내왔다.

모서리가 다 죽어버린, 원래는 붉은색이었을 텐데 퇴색하여 연한 감빛이 된 표지의 노트였다.

두툼한 현대외국소설(반 체제? 에로?) 쯤으로 기대했던 나는 맥이 툭 풀렸다. 무심히 첫 장을 펼쳐 보았다. 맨 아래 급하게, 그러나 또박또박 쓴 글체가 눈에 띄었다.

‘이 책을 누구에게도 보이지 말 것! 큰 화근이 될 수 있음!’

다음 장을 또 번졌다.

‘진실하면 가장 진실한 사람에게, 강하다면 가장 의지 강한 사람에게, 선량하다면 이 세상 가장 선량한 사람에게 이 글을 보여드리고 싶다’

어떤 범상치 않은 예감이 나의 긴장감을 서서히 자아냈다. 친구가 상허 이태준의 막내딸이 추방당해 살면서 쓴 일기라고 책 소개를 했다. 순간 내 오감이 온통 마비되어 왔다.

이걸 선 자리에서 읽고 싶었다. 주위 환경이 허락지 않았다. 독수리가 병아리를 덮쳐가듯 책을 품속에 급히 찔러 넣은 채 경상동 시 분과를 향해 총총 걸었다. 어떤 다른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각양각색 사람들, 사방을 둘러막은 우중충한 회색빌딩들, 앙상한 가로수들, 느릿느릿 지나가는 무궤도전차까지 지상의 모든 것이 나를 겨누어 감시의 조명을 빤히 켠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내가 조급한 마음에 못 이겨 책을 읽으려 꺼내들면 그 바람으로 책 주인이 어디선가 화살처럼 날아들 것만 같은 불안감이 왔다. 걸어서도 갈수 있는 길을 버스를 탔다.

분과에 들어서자 내가 일하는 방문을 안으로 잠가 버렸다.

붉은 색 주단이 깔린 복도를 오가며 “시인들, 조회 모이시오!”하는 분과지도원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두세 번 울리고 뒤이어 그쪽으로 향하는 인기척이 서너 번 있고 나서 문밖은 곧 잠잠해졌다.

우리 방 시인들은 다들 출장 나간 데다 우선 책을 읽어야 한다는 촉박감과 난 곧 추방당할 사람이라는 데서 생긴 오기가 그 목소리를 깨끗이 무시해버리도록 했다.

책을 손에 펼쳐든 나는 소파에 푹 틀어박혔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났을 때 나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두 눈은 창공의 황홀한 어떤 별을 본 듯이 그렇게 영롱하니 반짝이고 있었다.

일기장을 돌려주며 하는 나의 몇 마디 말에서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느낀 친구는 다른 노트 하나를 또 내주었다. 이태준 맏딸이 정리한 수기라고 했다.

그 것마저 읽고 나니 이태준 일가와 그 자녀들의 운명에 대해 총체적인 감이 잡혔다.

해방 후 단편소설의 완성자로 남한에서 그 이름 빛냈던 이태준은 북한에 가서 그 명성이 더욱 완성된 듯 하였다. 그의 자녀들이 김일성대 학생시절 아버지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전교직원 학생들의 숭배를 몸에 넘치도록 받아 안을 정도였다.

애들과 붓 싸움 잦다고 꾸짖는 어머니에게 선 자리에서 붓을 휘둘러 펼쳐놓은 종이위에 ‘천하명필 이태백, 천하문장 이태준’하고 쓴 글로 어머니를 경탄케 했던 9살의 문장신동 이태준!

그의 맏딸 글에 의하면 이태준의 문장력은 타고난 것이었다. 이태준이 쓰는 한편 한편의 글은 박력 있고 생동하였다. 이태준은 문장속도가 빨랐다. 어떤 날은 원고 독촉 온 편집원을 문밖에 세워놓은 채 단편소설 한편을 써내기도 하였다.

역사, 문화, 예술에 대해서도 이태준은 조예가 뛰어났는데 시장에서 그가 사들여두었다가 훗날 조선미술박물관에 기증한 17세기 화가 김홍도의 <갈과 게>를 비롯한 네 편의 미술작품은 국보적 유물로 그곳에 소장될 정도의 아주 값진 것이었다.

그런 그가 1957년, 반당 반혁명분자로 숙청당해 평양에서 황해남도 도일보사 인쇄소 인쇄공으로 내려간 것이었다. 7개월 만에, 그것도 이태준이 도당에 제기해서야 모처럼 배정받은 주택에 가족(이태준 부부와 막내 딸 이소현)이 처음 모여 앉은 날 밤 이태준은 심경을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작가적 양심과 타협하지 못하겠다. 김일성 소설을 정말 못쓰겠다. 김일성과 체험이 없는 데 어떻게 그에 대해 글을 쓴단 말이냐? 작가가 체험을 안 하고 쓴 글은 글이 아니다.”

그러나 이태준 숙청으로 그에 대한 북한의 정치적 보복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다. 도당은 도당대로 사상투쟁회의를 열고 “남조선에서 임무 받고 온 간첩”의 엉뚱한 모자를 그의 머리에 들씌우려고 했다.

이태준이 거부하면 할수록 사태는 불리하게 되어 있었다. ‘간첩 이태준’은 가족과 생존이 가능해도 샘물 같은 인간, 소설가 중의 소설가 이태준은 그 땅에 설 자리가 없었다. 가족을 살리자면 방법은 하나였다.

이태준은 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치욕의 선택을 했다. 그것도 최소한 자신의 인격이 지켜지는 한도에서라고 선을 그었다.

회의가 열리는 날 아침, 집을 나서는 양복차림인 그의 왼쪽 팔소매 속엔 어느 순간에라도 정맥을 끊을 수 있게 날 세운 손칼이 숨겨져 있었다. 다행히 회의 분위기는 그가 최후의 선택을 할 만큼 험악하게 흐르진 않았다.

인간 이태준은 자애로운 아빠이고 자상한 남편인 동시에 돈쓰기 좋아하고 음식범절이 까다롭고 집안의 생활필수품은 제 손으로 사들여야 마음 놓아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낚시 광으로서의 타고난 본색을 죽어도 버리지 못하는, 좋고 싫은 것이 특이하게 분명한 남자였다.

혁명화 내려 온 이후, 몇 달 째 낚시를 못 가 몸살을 앓는 그를 위해 부인 이순옥 여사는 남편이 새벽에 동네를 빠져 낚시질 가는 방법을 다 고안해 냈을 정도였다.

어느 날, 주위가 새까매진지 한참 되어서야 집에 들어선 아빠의 낚시 가방에서 펄쩍펄쩍 뛰는 손바닥만한 붕어 열댓 마리를 들여다 본 막내딸 소현이 아빠와 이런 여유 있는 농담을 주고 받았다.

“이 물고기들이 ‘자유주의자 이태준 이 놈!’하고 아버지에게 욕하지 않던가요?”

이태준이 막내 딸 귀에 대고 속삭였다.

“물고기들이 가방 안에서 ‘자유만세!’하고 춤추더구나.”

낚시질 터에서 그는 물고기만 잡아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었다. 머릿속엔 창작적 사색의 수확물이 그보다 훨씬 풍성하게 차 있곤 하였다.

나이 많아진 부인 이순옥 여사가 식성 까다롭고 잔소리 심해진 남편에게 “에이, 영감 만나서 고생만 죽도록 합니다.”고 곧잘 짜증 부릴 때면 “아이구, 벽촌 산골에 있다가 날 만나서 땟벗이 한 줄이나 아슈.”하고 골려줄 줄도 알았고 그러면서도 “여보, 그러지 말고 맏딸네 집에 가서 한 보름 있으며 푹 안정하고 오라요.”하며 토라진 아내를 푸근히 달래줄 줄도 아는 인정있고 이성 있는 남편이었다.

1964년, 혁명화 7여 년간 작가적 노동을 순간도 게을리 하지 않아 온 이태준은 평양 중앙당 101호 창작실(남조선물 창작기관) 작가로 회복되어 올라왔다.

이곳에서 10년간 남쪽주제 소설을 쓴 그는 1974년, 재차 숙청당했다. 이번엔 강원도 장동탄광 노동자구 탄광노동자로였다.

그곳에서 1년 만에 뇌출혈로 쓰러져 운신 못하는 부인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자리보존한지 3년째 된 아내가 죽자마자 알지도 못할 곳으로 돌연 실려가버렸다.

같은 시각에, 김일성대 수학부 졸업 후 본 대학 출판사 기자 및 지방대학 교원(이때 그가 쓴 강의교재들은 북한 역사에 없던 독창적인 것이어서 대학내 교원들이 서로 베껴가기에 여념 없었다)을 하며 일약 천재로 명성 떨쳤던(아버지를 회복시켜 사회의 정수계급에 함께 편입하려 그토록 아버지와 자신을 다그쳤던) 미혼남인 맏아들 이유백도 세상을 더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갔다.

대 부호이던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말을 타고 집을 뛰쳐나와 애인 이태준과의 결혼을 단행하였던 부인 이순옥 여사는 남편과 자녀 다섯의 문제로 달아오른 쇠꼬치에 살을 지져대는 듯한 아픔을 그렇듯 무수히 당하면서도 남편에 대한 애정을 죽는 순간까지 잃지 않았던 현숙한 여성이었다.

한번은 강제 이혼 당한 맏딸 소명이 자리에 누운 채 눈만 움직이는 어머니 이순옥여사 앞에 찾아와 눈물을 소리없이 흘리고 흘렸다.

이혼의 타격은 소명의 사랑하는 남편을 이혼 6개월 만에 저세상 사람으로 만든 것이었다. 전신마비에 언어 장애까지 온 이태준 부인이 그런 딸(물론 소명은 아버지의 권고도 있고 해 남편소식을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았다)에게 떠듬떠듬 말 했다.

“너....언 그래도 누운물 나마 이구나, 나....안 다 마라 버려다.” 그리고는 쓰는 흉내를 거듭 해 보였다.

소명은 종이 만년필을 준비한 후 얼굴을 엄마 입에 바싹 가져다 댄 채 귀를 강그렸다. 어떤 말은 몇 번 되물으며, 때로는 입모양을 보고 그 뜻을 알아맞히며 종이에 받아 적은 것은 뜻밖에도 시(소명은 아빠와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씨름해 이 시를 최종 완성시켰다)었다.

“나는 불나비/불빛을 보고 찾아든 나비/그 불빛 아름다워 내 넋은 취했네/그 불빛 뜨거워 내 심장 달았네/불길이여, 타 오르라, 더 활활 치솟으라/나는 이 몸, 이 마음 다 바쳐/너의 불길 더 높이 솟구치게 하리라.”

이태준으로 하여금 “허허, 이 노친이 평생 작가영감 따라다니더니 인젠 제법 문객쟁이 흉내 내는 구려.”하고 미소 짓게 만든 부인의 남편에 대한 사랑의 마지막 예물이었다.

이태준의 자녀 2남 3녀는 모두가 김일성대학 출신 재사였다. 맏딸 이소명 여사는 대학 졸업 후 구소련 아카데미야 어학연구원으로 가 있다가 아버지 문제로 중도에 귀국했고 아카데미시절 결혼한 그의 남편은 김일성대에서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인격과 실력으로 자기 위치를 뚜렷이 차지했던 학자, 교육자였다.

김일성대 생물학부 졸업 후 지방에 있는 북한 최고의 담수양어장에서 기사로 일하던 둘째딸 이소남은 이태준 명성의 덕을 노려 혈서까지 바쳐가며 구애 열을 펼친 한 폐병환자에게 걸려 결혼당하였다.

이태준이 숙청되자 이 남자는 자기 건강을 되찾아 준 아내를 이혼 안 해준다는 이유로 날마다 피 터지게 때려대다 못해 아예 죽이기 직전까지에 이르렀다.

부모 형제의 눈물어린 권유로 남편과 이혼하고 연구소직에서 쫓겨나 수난 많은 운명을 살았던 이소남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점심시간, 잠간 집에 들려 배추밭에 들어가 배추 솎음을 하던 중 별안간 들이닥친 안전부 차에 실려 지도에 조차 명시되어 있지 않은 지역으로 옮겨져 버렸다.

훗날 그녀의 소식이 기적적으로 전해졌는데, 딸에게 해줄 말을 묻는 옛 마을 문학청년(그는 폐병청년의 혈서를 소남에게 전해주었던 인물인데 소남을 마지막으로 만난 후 안전원복을 스스로 벗었다)에게 다른 생각은 말고 일 잘 하란다고 하더니 이런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오늘 조회 때 들으니 수령님께서 우리 인민은 위대하다고 하셨다 하는데, 그 위대한 인민속엔 저도 들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둘째 딸 이소남이 스스로도 명명한 바와 같이 살점이 덩이로 뚝뚝 떨어지는 가시투성이의 삶을 피를 철철 흘려가며 걸으면서도 인간의 고결함을 끝까지 잃지 않았던 그녀는 분명 세상의 위인중의 한 사람이었다.


나의 첫 오열을 자아내게 했던 일기의 주인공 이소현 여사는 외교관 직에 있던 남편(아내와 이혼하고 혁명화에 혁명화를 거듭하며 방황 중이던 그이는 남조선 대남공작에 곧 흡수되어 북한 땅에서 종적을 감췄다)과 이혼하고 아들까지 시집에 줘 버린 후 10여 년간의 처절하고도 고독하고 지난한 노동생활을 거쳤다.

그녀는 희망 없는 자신의 남은 생을 드디어 감지하자 혹시라도 남았을 ‘재기’란 미련과의 완전한 결별을 위해 중매쟁이 노파의 소개로 만나 본 힘장수인 촌부 노총각과 과감한 재혼을 감행하였다.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인데다 형제들 중 유달리 유약하고 지적이었던 막내인 그녀는 나이 오십 다 되어 찾아온 맏언니 이소명에게 이런 가슴속의 말을 꺼냈다.

“언니, 우리 아버진 인생의 번호가 맞지 않은 수재였어. 내가 박태원 선생이 번역작가 하라는 거 싫다며 아버지에게 기자로 일하게 해 달라고 떼쓰던 일 생각 나슈? 그때 내가 호미자루에 인생을 걸게 되리라 누가 생각이나 했겠수.......”

그랬다. 김일성대학 외문학부 졸업생인 그녀를 소설가 박태원은 번역 작가로 추천하기에 망설임 없을 만큼 그는 외국어실력이 출중한 국가적 재원이었다.

김일성대 학생시절 소프라노 가수로 명성 높았던 이태준의 둘째 아들 이유진은 죽어도 함께 한다며 따라나선 사랑하는 처녀와 추방되어 가족을 이루고 살다가 그들과 고스란히 정치범 수용소 행을 당하였다.

나는 한국에 온지 5년만인 지난 해 초, 강원도 철원에 있는 이태준 생가 터를 방문하였다. 그곳 문학신인들이 10년 전에 들고 가 몰래 꽂아 놓은 나무 푯말을 쓰다듬으며 생가터 주위로 예쁘게 솟은 산발을 바라보며 조각구름이 둥실 떠가는 파란 하늘을 쳐다보며 하는데 갑자기 심장을 도끼로 찍어내는 듯한 아픔이 사정없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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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dailyseop.com/section/article_view.aspx?at_id=24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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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2 21:01

봉별기(逢別記) - 이상

봉별기(逢別記)

이 상

1

스물세 살이요―---삼월이요―---각혈이다. 여섯 달 잘 기른 수염을 하루 면도칼로 다듬어 코밑에 다만 나비만큼 남겨 가지고 약 한 제 지어 들고 B라는 신개지(新開地) 한적한 온천으로 갔다. 게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

그러나 이내 아직 기를 펴지 못한 청춘이 약탕관을 붙들고 늘어져서는 날 살리라고 보채는 것은 어찌하는 수가 없다. 여관 한등(寒燈) 아래 밤이면 나는 늘 억울해했다.

사흘을 못 참고 기어이 나는 여관 주인영감을 앞장세워 밤에 장고소리 나는 집으로 찾아갔다. 게서 만난 것이 금홍(錦紅)이다.

"몇 살인구?"

체대(體大)가 비록 풋고추만하나 깡그라진 계집이 제법 맛이 맵다. 열여섯 살? 많아야 열아홉 살이지 하고 있자니까,

"스물한 살이에요."

"그럼 내 나인 몇 살이나 돼뵈지?"

"글쎄 마흔? 서른아홉?"

나는 그저 흥! 그래 버렸다. 그리고 팔짱을 떡 끼고 앉아서는 더욱더욱 점잖은 체했다. 그냥 그날은 무사히 헤어졌건만.

이튿날 화우(畵友) K군이 왔다. 이 사람인즉 나와 농하는 친구다. 나는 어쩌는 수 없이 그 나비 같다면서 달고 다니던 코밑수염을 아주 밀어 버렸다. 그리고 날이 저물기가 급하게 또 금홍이를 만나러 갔다.

"어디서 뵌 어른 겉은데."

"엊저녁에 왔던 수염 난 양반, 내가 바루 아들이지. 목소리꺼지 닮었지?"

하고 익살을 부렸다. 주석이 어느덧 파하고 마당에 내려서다가 K군의 귀에 대고 나는 이렇게 속삭였다.

"어때? 괜찮지? 자네 한번 얼러 보게."

"관두게, 자네나 얼러 보게."

"어쨌든 여관으로 껄구 가서 짱껭뽕을 해서 정허기루 허세나."

"거 좋지."

그랬는데 K군은 측간에 가는 체하고 피해 버렸기 때문에 나는 부전승으로 금홍이를 이겼다. 그날 밤에 금홍이는 금홍이가 경산부라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언제?"

"열여섯 살에 머리 얹어서 열일곱 살에 낳았지."

"아들?"

"딸."

"어딨나?"

"돌 만에 죽었어."

지어 가지고 온 약은 집어치우고 나는 전혀 금홍이를 사랑하는 데만 골몰했다. 못난 소린 듯하나 사랑의 힘으로 각혈이 다 멈췄으니까.

나는 금홍이에게 놀음채를 주지 않았다. 왜? 날마다 밤마다 금홍이가 내 방에 있거나 내가 금홍이 방에 있거나 했기 때문에―---

그 대신―---

우(禹)라는 불란서 유학생의 유야랑(遊冶郞)을 나는 금홍이에게 권하였다. 금홍이는 내 말대로 우씨와 더불어 '독탕'에 들어갔다. 이 '독탕'이라는 것은 좀 음란한 설비였다. 나는 이 음란한 설비 문간에 나란히 벗어 놓은 우씨와 금홍이 신발을 보고 언짢아하지 않았다.

나는 또 내 곁방에 와 묵고 있는 C라는 변호사에게도 금홍이를 권하였다. C는 내 열성에 감동되어 하는 수 없이 금홍이 방을 범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금홍이는 늘 내 곁에 있었다. 그리고 우, C 등등에게서 받은 십 원 지폐를 여러 장 꺼내 놓고 어리광 섞어 내게 자랑도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는 백부님 소상 때문에 귀경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복숭아꽃이 만발하고 정자 곁으로 석간수가 졸졸 흐르는 좋은 터전을 한군데 찾아가서 우리는 석별의 하루를 즐겼다. 정거장에서 나는 금홍이에게 십 원 지폐 한 장을 쥐어 주었다. 금홍이는 이것으로 전당잡힌 시계를 찾겠다고 그러면서 울었다.



2

금홍이가 내 아내가 되었으니까 우리 내외는 참 사랑했다. 서로 지나간 일은 묻지 않기로 하였다. 과거래야 내 과거가 무엇 있을 까닭이 없고 말하자면 내가 금홍이 과거를 묻지 않기로 한 약속이나 다름없다.

금홍이는 겨우 스물한 살인데 서른한 살 먹은 사람보다도 나았다. 서른한 살 먹은 사람보다도 나은 금홍이가 내 눈에는 열일곱 살 먹은 소녀로만 보이고 금홍이 눈에 마흔 살 먹은 사람으로 보인 나는 기실 스물세 살이요, 게다가 주책이 좀 없어서 똑 여남은 살 먹은 아이 같다. 우리 내외는 이렇게 세상에도 없이 현란(絢亂)하고 아기자기하였다.

부질없는 세월이―---일년이 지나고 팔월, 여름으로는 늦고 가을로는 이른 그 북새통에―---금홍이에게는 예전 생활에 대한 향수가 왔다.

나는 밤이나 낮이나 누워 잠만 자니까 금홍이에게 대하여 심심하다. 그래서 금홍이는 밖에 나가 심심치 않은 사람들을 만나 심심치 않게 놀고 돌아오는―---즉 금홍이의 협착(狹窄)한 생활이 금홍이의 향수를 향하여 발전하고 비약하기 시작하였다는 데 지나지 않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게 자랑을 하지 않는다. 않을 뿐만 아니라 숨기는 것이다.

이것은 금홍이로서 금홍이답지 않은 일일밖에 없다. 숨길 것이 있나? 숨기지 않아도 좋지. 자랑을 해도 좋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금홍의 오락의 편의를 돕기 위하여 가끔 P군 집에 가 잤다. P군은 나를 불쌍하다고 그랬던가싶이 지금 기억된다.

나는 또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즉 남의 아내라는 것은 정조를 지켜야 하느니라고!

금홍이는 나를 내 나태한 생활에서 깨우치게 하기 위하여 우정 간음하였다고 나는 호의로 해석하고 싶다. 그러나 세상에 흔히 있는 아내다운 예의를 지키는 체해 본 것은 금홍이로서 말하자면 천려(千慮)의 일실(一失)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실없는 정조를 간판삼자니까 자연 나는 외출이 잦았고 금홍이 사업에 편의를 돕기 위하여 내 방까지도 개방하여 주었다. 그러는 중에도 세월은 흐르는 법이다.

하루 나는 제목(題目) 없이 금홍이에게 몹시 얻어맞았다. 나는 아파서 울고 나가서 사흘을 들어오지 못했다. 너무도 금홍이가 무서웠다.

나흘 만에 와보니까 금홍이는 때묻은 버선을 윗목에다 벗어 놓고 나가 버린 뒤였다.

이렇게도 못나게 홀아비가 된 내게 몇 사람의 친구가 금홍이에 관한 불미한 가십을 가지고 와서 나를 위로하는 것이었으나 종시 나는 그런 취미를 이해할 도리가 없었다.

버스를 타고 금홍이와 남자는 멀리 과천 관악산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는데 정말 그렇다면 그 사람은 내가 쫓아가서 야단이나 칠까 봐 무서워서 그런 모양이니까 퍽 겁쟁이다.



3

인간이라는 것은 임시 거부하기로 한 내 생활이 기억력이라는 민첩한 작용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달 후에는 나는 금홍이라는 성명 삼 자까지도 말쑥하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두절된 세월 가운데 하루 길일을 복(卜)하여 금홍이가 왕복 엽서처럼 돌아왔다. 나는 그만 깜짝 놀랐다.

금홍이의 모양은 뜻밖에도 초췌하여 보이는 것이 참 슬펐다. 나는 꾸짖지 않고 맥주와 붕어 과자와 장국밥을 사먹여 가면서 금홍이를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금홍이는 좀처럼 화를 풀지 않고 울면서 나를 원망하는 것이었다. 할 수 없어서 나도 그만 울어 버렸다.

"그렇지만 너무 늦었다. 그만해두 두 달 지간이나 되니 않니? 헤어지자, 응?"

"그럼 난 어떻게 되우, 응?"

"마땅헌 데 있거든 가거라, 응."

"당신두 그럼 장가가나? 응?"

헤어지는 한에도 위로해 보낼지어다. 나는 이런 양식 아래 금홍이와 이별했더니라. 갈 때 금홍이는 선물로 내게 베개를 주고 갔다.

그런데 이 베개 말이다.

이 베개는 이인용(二人用)이다. 싫대도 자꾸 떠맡기고 간 이 베개를 나는 두 주일 동안 혼자 베어 보았다. 너무 길어서 안됐다. 안됐을 뿐 아니라 내 머리에서는 나지 않는 묘한 머릿기름 땟내 때문에 안면(安眠)이 적이 방해된다.

나는 하루 금홍이에게 엽서를 띄웠다.

'중병에 걸려 누웠으니 얼른 오라'고.

금홍이는 와서 보니까 참 딱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역시 며칠이 못 가서 굶어죽을 것같이만 보였던가 보다. 두 팔을 부르걷고 그날부터 나가서 벌어다가 나를 먹여살린다는 것이다.

"오―케이."

인간 천국―---그러나 날이 좀 추웠다. 그러나 나는 대단히 안일하였기 때문에 재채기도 하지 않았다.

이러기를 두 달? 아니 다섯 달이나 되나 보다. 금홍이는 홀연히 외출했다.

달포를 두고 금홍의 홈식(향수)을 기대하다가 진력이 나서 나는 기명집물(器皿什物)을 두들겨 팔아 버리고 이십일 년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와보니 우리집은 노쇠했다. 이어 불초 이상(李箱)은 이 노쇠한 가정을 아주 쑥밭을 만들어 버렸다. 그 동안 이태 가량―---

어언간 나도 노쇠해 버렸다. 나는 스물일곱 살이나 먹어 버렸다.

천하의 여성은 다소간 매춘부의 요소를 품었느니라고 나 혼자는 굳이 신념한다. 그 대신 내가 매춘부에게 은화를 지불하면서는 한 번도 그네들을 매춘부라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이것은 내 금홍이와의 생활에서 얻은 체험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 이론같이 생각되나 기실 내 진담이다.



4

나는 몇 편의 소설과 몇 줄의 시를 써서 내 쇠망해 가는 심신 위에 치욕을 배가하였다. 이 이상 내가 이 땅에서의 생존을 계속하기가 자못 어려울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나는 하여간 허울 좋게 말하자면 망명해야겠다.

어디로 갈까.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동경으로 가겠다고 호언했다. 그뿐 아니라 어느 친구에게는 전기 기술에 관한 전문 공부를 하러 간다는 둥, 학교 선생님을 만나서는 고급 단식 인쇄술을 연구하겠다는 둥, 친한 친구에게는 내 오 개 국어에 능통할 작정일세 어쩌구, 심하면 법률을 배우겠소까지 허담을 탕탕 하는 것이다. 웬만한 친구는 보통들 속나 보다. 그러나 이 헛선전을 안 믿는 사람도 더러는 있다. 하여간 이것은 영영 빈빈털터리가 되어 버린 이상의 마지막 공포에 지나지 않는 것만은 사실이겠다.

어느 날 나는 이렇게 여전히 공포(空砲)를 놓으면서 친구들과 술을 먹고 있자니까 내 어깨를 툭 치는 사람이 있다. '긴상'이라는 이다.

"긴상(이상도 사실은 긴상이다), 참 오래간만이슈. 건데 긴상 꼭 긴상 한번 만나 뵙자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긴상 어떡허시려우."

"거 누군구. 남자야? 여자야?"

"여자니까 일이 재미있지 않느냐 그런 말야."

"여자라?"

"긴상 옛날 오쿠상(아내)."

금홍이가 서울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다. 나타났으면 나타났지 나를 왜 찾누?

나는 긴상에게서 금홍이의 숙소를 알아 가지고 어쩔 것인가 망설였다. 숙소는 동생 일심(一心)이 집이다.

드디어 나는 만나 보기로 결심하고 그리고 일심이 집을 찾아가서,

"언니가 왔다지?"

"어유― 아제두, 돌아가신 줄 알았구려! 그래 자그만치 인제 온단 말씀유, 어서 들오슈."

금홍이는 역시 초췌하다. 생활전선에서의 피로의 빛이 그 얼굴에 여실하였다.

"네놈 하나 보구져서 서울 왔지 내 서울 뭘 허려 왔다디?"

"그러게 또 난 이렇게 널 찾아오지 않었니?"

"너 장가갔다더구나."

"얘 디끼 싫다. 기 육모초 겉은 소리."

"안 갔단 말이냐 그럼?"

"그럼."

당장에 목침이 내 면상을 향하여 날아 들어왔다. 나는 예나 다름이 없이 못나게 웃어 주었다.

술상을 보아 왔다. 나도 한 잔 먹고 금홍이도 한 잔 먹었다. 나는 영변가를 한마디하고 금홍이는 육자배기를 한마디했다.

밤은 이미 깊었고 우리 이야기는 이게 이 생(生)에서의 영이별이라는 결론으로 밀려갔다. 금홍이는 은수저로 소반전을 딱딱 치면서 내가 한 번도 들은 일이 없는 구슬픈 창가를 한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 버려라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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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2 21:00

금홍에게 -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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役事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 내어놓고보니 도무지 어디서인가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木徒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 소나기 하였으니 필시그들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變怪로 다 간데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 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시는 그만 찢어버리고 싶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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